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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즈와 파랑새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주)디스테이션

    《리즈와 파랑새》는 2018년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의 외전이자 스핀오프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고등학교 관악부의 두 여학생, 미조레와 노조미 사이에 흐르는 섬세한 감정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외적으로는 클래식 연습과 연주라는 음악적 배경을 두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감정 표현의 어려움, 여성 간의 미묘한 우정, 그리고 음악을 통한 자아 성장이라는 주제를 조용하고 정밀하게 다뤄낸다. 대사가 많지 않고, 연출은 차분하며, 감정은 간접적으로 표현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리즈와 파랑새》의 깊이 있는 정서를 조명해 본다.

    감정 표현의 어려움: 말보다 더 많은 침묵

    《리즈와 파랑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미조레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매우 서툰 인물이다. 그녀는 대화를 할 때 시선을 피하고, 자신의 마음을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친구 노조미는 외향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난 성격으로, 미조레와는 대조적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 서로의 감정과 삶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하지만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미조레는 노조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기도, 전달하기도 어려워한다. 영화는 이런 감정 표현의 어려움을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 단순히 "내가 널 좋아해" 혹은 "함께 있고 싶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순간들로 감정의 진폭을 보여준다. 미조레가 노조미를 바라보는 시선, 그 눈빛에 담긴 아쉬움, 거리 두기 속에 숨어 있는 갈망—all of these가 카메라 워킹과 배경 연출로 전달된다. 특히, 고요한 복도에서 둘이 나란히 걷는 장면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감정은 폭발 직전까지 차오른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내성적인 성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감정을 내면에 품고 사는 이들이 겪는 불안, 고립, 그리고 단절의 느낌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관객은 미조레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뒤흔들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침묵이 곧 서사이며, 미묘한 행동 하나하나가 고백처럼 다가오는 이 영화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관계의 불균형: 함께 있지만 멀어지는 마음

    《리즈와 파랑새》는 미조레와 노조미, 두 사람의 친밀하면서도 어딘가 맞닿지 않는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들은 몇 년 동안 가까운 친구로 지냈고,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감정의 무게나 방향은 결코 대칭적이지 않다. 영화는 겉보기엔 단단한 유대처럼 보이는 관계 안에 숨어 있는 미세한 균열을 정교하게 들여다본다. 미조레는 노조미에게 강한 감정적 의존을 보이며, 자신의 세계 대부분을 그녀에게 집중한다. 반면 노조미는 사회적으로 활발하고 주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인물로, 미조레의 감정에 완전히 응답하지 못한다. 이처럼 한쪽만 쏟아내는 관계는 처음엔 따뜻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을 잃고 서로를 상처 입히게 된다. 이 관계의 불균형은 음악 연습 장면 속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미조레는 노조미와 함께 하는 듀엣을 자신의 감정의 전부처럼 받아들이지만, 노조미는 이를 단순한 연습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같은 곡을 연주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농도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미조레가 연습을 할수록 감정이 고조되는 반면, 노조미는 오히려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는 단지 음악적인 호흡의 불일치가 아니라, 감정의 조율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관계가 지속되려면 감정의 에너지와 방향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미조레는 노조미를 향한 감정이 단순한 우정인지, 동경인지, 혹은 그 이상의 감정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하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노조미는 미조레의 깊은 애정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때로는 회피하거나 가볍게 넘기며 둘 사이에 감정의 틈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미조레는 더 깊은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그것이 다시 연주나 일상에 영향을 미치며 관계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이러한 불균형을 과장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도 한쪽이 지나치게 기대거나, 반대로 한쪽이 지나치게 독립적인 경우가 존재하며, 그것이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리즈와 파랑새》는 이 미묘한 감정의 균형을 음악과 시선, 침묵, 시각적 거리감으로 풀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지금 어떤 관계 안에 있는가?"를 되묻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미조레가 그 불균형 속에서 자신만의 자립적인 감정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노조미가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미조레의 성장 과정은, 모든 감정이 반드시 이해받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관계가 성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리하여 관계의 균형은 때로 유지가 아니라, 이별을 통해서도 회복될 수 있음을 조용히 알려준다. 이 메시지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울림이 크다.

    리즈와 파랑새 - 연주와 성장

    《리즈와 파랑새》의 서사는 음악 연습이라는 외형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인공들이 ‘연주’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 속 중심 연주는 ‘리즈와 파랑새’라는 환상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 곡으로, 두 사람이 각각 ‘리즈’와 ‘파랑새’ 역할을 맡아 듀엣을 준비한다. 이 곡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심리 상태와 관계의 상징 그 자체다. 미조레는 오보에를 연주하며, 안정된 리듬과 감정의 절제를 보여준다. 반면 노조미는 플루트 연주자로서 자유롭고 가볍다. 이들의 연주는 점점 충돌하며, 처음에는 호흡이 맞지 않는다. 음악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둘의 갈등은 곧 음악적 불일치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미조레는 연주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자각하고, ‘스스로를 위한 음악’을 선택하게 된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언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이 음색과 리듬을 통해 진심을 전하고, 그 속에서 자아를 찾는다. 미조레는 결국 연주를 통해 자신이 노조미에게만 기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단순히 오보에 실력이 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립의 상징이며 자아 성장의 표현이다. 마지막 연주 장면에서 미조레의 연주가 훨씬 더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변한 것을 보면, 그가 음악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감정과 음악, 성장의 서사를 완벽하게 연결하여,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공감’하게 만든다.

     

    《리즈와 파랑새》는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감정 표현의 어려움, 여성 간 우정의 미묘함, 그리고 음악을 통한 자아 발견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 영화는 큰 사건 없이도, 대사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힘을 지녔다. 관계에 대해 고민 중이거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면 이 작품이 전하는 ‘침묵의 목소리’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리즈와 파랑새는 우리의 마음에도, 그렇게 조용히 날아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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