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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목소리의 형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주)디스테이션

    《목소리의 형태》(聲の形, A Silent Voice)는 2016년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연출한 감정 중심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 작품은 청각장애 소녀와 그녀를 괴롭힌 소년의 재회를 중심으로, 학교 폭력의 흔적, 자아 회복의 과정, 그리고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무엇인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낸다. 단순한 학원물이나 성장물이 아닌, 인간의 상처와 회복을 진중하게 다룬 이 영화는 일본 내외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고, 지금도 '인생 애니'로 회자된다. 본 리뷰에서는 ‘학교 폭력’, ‘자아 회복’, ‘용서와 화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목소리의 형태》의 깊은 메시지를 분석해 본다.

    학교 폭력: 말 없는 폭력의 잔인함

    《목소리의 형태》는 초등학교 시절 청각장애를 지닌 히로인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 온 뒤 겪는 따돌림과 괴롭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친구들과 함께 쇼코를 놀리고 괴롭히는 데 앞장서며, 소녀는 점차 마음의 문을 닫는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장난처럼 묘사되지만, 영화는 그 속에 담긴 무언의 폭력성과 사회의 방관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시다가 학교에서 ‘주도 가해자’로 낙인찍힌 뒤, 자신 역시 따돌림의 대상이 되며 관계의 권력이 순식간에 바뀌는 구조이다. 이 장면은 학교 폭력이 단순한 선악 구도로 끝나지 않으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쉽게 전환될 수 있는 복잡한 현실을 담고 있다. 주변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 친구들의 침묵, 교사의 방관 등은 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구조를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이 영화는 폭력을 시각적으로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한 톤으로 다룬다. 하지만 이 차분함이야말로 관객에게 더욱 날카로운 인상을 남긴다. 말없는 폭력, 시선, 무시, 잘못된 농담과 웃음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이 영화는 절제된 연출로 강하게 전달한다. 《목소리의 형태》는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되, 그것을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부수는 체계적인 침묵’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자아 회복: 죄책감과 침묵 속에서 다시 걷다

    이시다 쇼야는 중학생이 된 뒤에도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깊은 죄책감에 빠져 있다. 친구들과의 단절, 가족과의 거리감, 그리고 타인과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사과나 후회로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시다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차단하며 살아가고, 타인의 얼굴 위에는 'X' 마크가 붙어 있어 그들과의 연결이 단절되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쇼코와의 우연한 재회를 계기로, 이시다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극적이거나 빠르지 않다. 오히려 매우 느리고 조심스러운 과정이며, 그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진짜 사과’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이시다는 단순히 과거를 잊거나 덮으려 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책만으로는 치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아 회복은 단순히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이 점을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 그는 타인과 다시 대화하고, 관계를 맺고,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간’으로 회복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군중 속에 있던 얼굴의 ‘X’ 마크가 하나둘씩 사라지는 장면은, 그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시다의 자아 회복 과정은 시청자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직면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용서받기 위한 ‘노력’의 본질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치유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목소리의 형태 - 용서와 화해

    《목소리의 형태》가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지점은 결국 ‘용서와 화해’에 있다. 영화는 단순히 이시다가 쇼코에게 용서를 구하고, 쇼코가 받아주는 구조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감동의 중심에 둔다. 쇼코 역시 피해자로만 남아 있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를 상처 입혔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 복잡한 감정의 교차는 단순한 가해자-피해자 서사를 넘어선 인간적인 접근이다. 이시다와 쇼코는 수차례의 만남과 충돌을 통해, 결국 서로의 마음에 다가서게 된다. 그 과정은 감정적으로 매우 섬세하며, 언어보다 ‘침묵’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쇼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이시다는 말을 꺼낼 수 없다. 하지만 이 둘은 대화 없이도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알아가며, '진짜 용서'란 말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후반부 쇼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장면과, 이시다가 이를 막으려는 장면은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쇼코는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고 느끼고 있었고, 이시다는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이 장면은 ‘화해’라는 단어가 단지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용서와 화해는 상호적인 과정이다. 단순히 용서를 비는 자와 받아주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노력 안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목소리의 형태》는 그 과정을 현실적이고 조심스럽게 담아내며, 관객에게 진정한 ‘이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목소리의 형태》는 인간의 내면을 다룬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정직한 작품 중 하나다. 학교 폭력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자아 회복의 여정과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 영화는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감정을 말로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목소리의 형태》는 그 답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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